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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타/살다 보면 또 좋은 날 오겠지

지금은 말수가 적은 게 강점이다.

by 일코 2020. 7. 31.

  나는 어렸을 때부터, 말수가 제일 적은 편에 속했다. 대신 속생각이 많았고, 표현도 잘 하지 못했다. 내 두껍고 무거운 목소리가 싫기도 했고, 나도 내 머릿속이 복잡해서, 타래를 풀어놓기가 쉽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다. 어렸을 때는 컴플렉스에 가까울 만큼, 말을 못하는 게 싫었는데, 나이를 먹고는 나도 모르게(지금은 안다) 이게 상당한 장점이 되어 있었다. 주변에 나 대신 말이 많은 사람이 참 많아졌기 때문이다.

  학교에서도, 회사에서도 그렇고, 남의 험담이든,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든, 고민이든 뭐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참 많다. 서른 즈음에 깨닫게 된 거지만, 평소 말이 적은 대부분의 사람들도, 어떤 비밀번호 같은 코멘트 몇 마디를 해주면 마음에 쌓아놓은 이야기들을 술술 털어놓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. 내가 너무 말수가 적으니 어디 가서 소문 퍼뜨릴 것 같지는 않아서였을까? 맞받아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면서 묵묵히 들어주었기 때문일까? 아니면 내가 심심해 보여서~(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.) 나도 어떤 이유로 전문가의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, 상담해주시는 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부분은, 내게 별 조언을 해 주지 않으셨는데, 오히려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최면술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.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해도 다 들어주셨다. 재미있는 것은 그 짧은 기간의 상담을 통해서 내 복잡한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. (나도 이런 식으로 듣고 말하고 싶었다.)

  하여튼 이젠 이 팀에서도 하루 걸러 한 번씩은 "시간 뺏어 미안한데, 차 한 잔만 같이 할래요?" 하고 나와 시간을 공유해주는 고마운 동료들이 생겼다. 사실 다들 대단히 유능하고 매력있는, 나에 비해 훨씬 잘난 분들 같다. 나도 (못이기는 척) 고마운 마음으로 커피 한 잔 같이 내려가지고 으슥한 데로 간다. 대부분은 가벼운 고민들, 그냥 사는 이야기다. 이 타이밍에 나름의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, 그건 아무리 말수가 적은 나라도 뭔가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질 때! 그 때 입을 닫는 것이다. 관점을 바꾸거나 '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자!' 라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. 그냥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참견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조금 누그러진다. 그러다 보면 몰입이 된다. 길어도 십여분인데 금방 간다. (결혼하고 지금까지 집에서도 정말 많이 활용하고 있다.)

  사실 내가 참견을 안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, 하나는 내 말에 별 자신이 없다. 으쓱해진 마음에 내가 내뱉었던 얄팍한 말뭉치들이 상대방의 마음으로 잘 들어가는 것 같지도 않았고, 열에 하나 들어가더라도 눈에 띌 만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. 또 다른 이유는 (앞의 이유 때문에)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걸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매번 느꼈기 때문이다. 가끔 나도 너무너무 뭔가 말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, 바로 그 때 말을 아끼면 분위기가 정말 훈훈해진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. 반대로 내가 그 새를 못 참고 입을 연 경우에는, 맺는 분위기가 밝은 적은 거의 없었다. (역시,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그렇다......)

  하여튼 다짜고짜 입을 닫고 있는 게 그다지 바람직한 소통법은 아닐테지만, 회사에서는 가끔 잘 먹히는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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